이 유물은 조선 효종과 현종 년간에 지평(持平), 영해부사(寧海府使) 등을 역임한 정승명(鄭承明, 604~1670)의 처 숙인 창녕 성씨(昌寧成氏, 1604~1669)의 묘지이다. 정승명은 자가 경여(慶餘), 호는 오천(烏川), 본관은 연일(延日)이며, 부인이 죽자 그 묘지를 직접 지었다. 이 글에서 정승명은 창녕성씨의 집안 가계를 간략히 적어 그녀가 명문가의 후손임을 분명히 밝히고, 이어 집안 안팎으로 부녀자로서의 도리를 다한 그녀의 성실하고 진실한 평소 모습을 소상하게 기술하였다. 그리고 창녕성씨가 자신의 부임지 영해(寧海)에서 역병을 얻어 사망하자 이를 자신으로 말미암은 죽음으로 여기고 크게 애통해하였다. 이 작품은 슬프지만 담담하게 망인(亡人)의 일대기를 기록한 조선시대 전형적 묘지의 하나로서, 그리고 조선 중기 도자사 연구에 자료적 가치가 큰 철화백자의 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 시대 : 조선시대(1669년)
◎ 규격 : 18cm × 23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