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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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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하호작도

    Title

    분류명
    기타중요소장유물
    소장품명
    송하호작도
    내용
    소나무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호랑이와 소나무 가지에 앉아 호랑이를 향해 지저귀는 두 마리 까치를 소재로 하였다. 까치호랑이는 민화의 가장 대중적인 소재이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호랑이는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가지며 새해 문배로 이용되었던 그림이다. 붉은 해와 영지 등의 길상적인 도상도 세화로서의 기능성을 더 해주는 요소이다. 호랑이의 해학적인 얼굴 묘사와 앞 다리 사이로 나온 꼬리와 뒷다리의 소용돌이무늬는 특정 양식이나 화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분방한 민화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 시대 : 19~20세기 초
    ◎ 규격 : 87cm × 126.4cm
  • 대한도기 그림접시

    Title

    분류명
    기타중요소장유물
    소장품명
    대한도기 그림접시
    내용
    대한도기주식회사는 해방이후 부산 영도에 건립 ․ 운영된 근대 도자기 회사로 일제가 1917년 부산 영도에 설립한 조선경질도기가 그 전신이다. 한국전쟁기 전쟁피난지라는 부산의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화가들의 필체가 반영된 독특한 계열의 자기가 일정기간 생산되었는데 이것이 대한도기의 핸드페인팅기법 감상용 자기이다. 전란을 피해 부산으로 피난 온 화가들 중 생활고 때문에 대한도기에 적을 두고 연명한 화가들이 있었는데, 알려진 대표적인 인물로는 金殷鎬(以堂, 1892~1976), 卞寬植(小亭, 1899~1976), 金學洙(惠村 1919~2009), 黃廉秀,(1917~2008), 李仲燮(1916~1956), 서울대 교수였던 張遇聖(月田, 1912~2005)과 미대생이었던 朴魯壽(藍丁, 1927~ ) 등이었다. 대부분의 화가가 사장 지영진과 인연이 있거나 지영진 사장의 지우인 변관식과 인연이 있는 인물들이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대량생산되는 생활도자기와는 달리 장식품이나 기념품 또는 수출품으로 제작되는 특별한 도자기 제작공정에 참여하였다. 대체로 도자기 그림의 내용은 널뛰기, 다듬질, 가야금 연주, 베틀 짜기, 그네타기, 빨래하기 등 한국적인 풍속화류나 특별한 풍경이 주류를 이루었다.
    ◎ 시대 : 광복 이후
    ◎ 규격 : 지름 31cm
  • 해옹 산수

    Title

    분류명
    기타중요소장유물
    소장품명
    해옹 산수
    내용
    종이에 담채로 그려진 작은 크기의 선면화이다. 화면 우측상단에 치우쳐 초옥, 나무 등의 경물을 배치하고 나머지 공간은 수면으로 남겨 두었다. 전형적인 남종문인화계열의 작품으로 화면 중앙에 “朝鮮 海翁”이라는 관지가 있다. 해옹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일명화가로 초량왜관을 중심으로 대일 수출용 회화를 제작하던 일련의 화가군에 속한다. 이 작품 역시 작가의 아호 앞에 “조선”이 명기되어 있어 대일 수출용 그림으로 판단된다.
    ◎ 시대 : 조선시대
    ◎ 규격 : 15.4cm
  • 유인우봉이씨백자청화묘지(孺人牛峯李氏白磁靑畵墓誌)

    Title

    분류명
    기타중요소장유물
    소장품명
    유인우봉이씨백자청화묘지(孺人牛峯李氏白磁靑畵墓誌)
    내용

    홍겸주(洪謙周)의 처인 우봉 이씨(牛峯李氏, 1847~1874)의 묘지로 동일 인물의 묘에서 출토된 것임. 홍겸주가 그 글을 지었음. 묘지석은 백자로 제작되었으며, 그 글씨는 청화 안료로 작성되었음. 각 지석은 모두 10행 15글자로 통일되어 있음. 묘지에는 우봉 이씨의 가계와 그녀의 생애가 간략히 기술되어 있고, 이어 글을 지은 홍겸주 자신의 가계가 간단히 서술되어 있음. 이에 의하면 우봉 이씨는 명문가의 후손으로 그의 현조(顯祖)는 조선 후기 노론계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이재(李縡, 1680~1746), 증조(曾祖)는 그의 손자인 이채(李采, 1745~1820)이며. 그녀는 이채의 손자인 이도(李?)의 서녀(庶女)라고 함. 그리고 그녀는 1847년(戊申年)에 태어나서 1858년(戊午年)에 홍겸주에게 시집왔으며, 이후 1남 1녀를 두었으나 향년 28세로 생을 마감했다고 함. 한편, 홍겸주는 자(字)가 형백(亨伯), 본관은 풍산(豊山)으로 이판(吏判) 등을 역임했던 홍열모(洪說謨, 1804~?)의 서자(庶子)라고 함. 이 묘지는 우봉 이씨가 사망한 다음해인 1875년 충청도 공주(公州) 양야리(陽也里)에 이장 시 작성된 것임.  

    ◎ 시대 : 조선시대(1875년)
    ◎ 규격 : 14cm × 2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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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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