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살아 숨쉬는 이곳은 부산박물관
우리 박물관은 2014년 4월 22일부터 6월 30일까지 도로개설과 관련한 수영구 수영동 일원의 좌수영성지 문화재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좌수영성은 낮은 구릉을 끼고 축조된 평산성으로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의 성이다. 원래 동래 부산포에 있었으나 조선 태종대에 울산의 개운포로 옮겨진 후 동래 남촌(수영동)으로 이설되었다. 이후 인조 13년(1635)에 감만이포(감만동)으로 이전하였다가 17년 뒤인 효종 3년(1652)에 현재의 수영으로 다시 옮겨왓다. 이후 몇 차례의 이전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고종 32년(1895) 군제개혁으로 혁파되기까지 존속하였다.
좌수영성의 규모는 <左水營誌>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기록상 규모는 석축으로 둘레는 1,193보, 높이 13척, 부속시설은 여장 375개, 옹성 3곳, 치성 6곳이며, 동문루는 6칸, 남문루홍예 6칸, 북문루 2칸, 포루 3곳이다. 우물은 3개소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북문지와 수구를 포함한 체성 일부를 확인하였으며 후대의 배수로와 석열을 확인하였다. 북문지의 경우에는 옹성의 일부와 입구부가 확인되었고, 서문지에서 북문지로 이어지는 체성부 18.8m 구간이 확인되었다. 후대에 축조된 건물로 인해 지표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체성부는 지하에 2.0m 정도의 높이로 잔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게 확인되었으며, 너비 110cm, 높이 115cm로 외부로 빠져나가는 수구도 확인되었다. 축조기법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석성의 형태로 나타나며, 체성은 판상의 석재를 이용하여 1~2단 높이로 뒤로 물려 지대석을 놓고 그 위로 기단석과 면석을 올렸다. 토층 및 출토유물의 확인결과 대부분 조선 후기 내지 일제 강점기 시기의 것으로 수구내에서 확인된 유물로 보아도 폐영된 후에도 상당기간 배수구의 기능을 해왔던 것으로 보이며 북문의 입구부도 폐영 후 일정기간 통로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를 통해 고지도나 기록에 나오는 좌수영성의 북문지와 옹성의 흔적을 확인하였으며 잔존상태가 좋은 체성의 일부도 확인하였다. 좌수영성지 내에서 확인된 체성 중 이처럼 잔존상태가 양호한 자료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부산지역 성곽연구에 중요한자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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