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대상지역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 분절마을 및 탑동, 구랑동 일원으로 부산도시공사에서 시행하는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 내 미음지구 A-1, D-2, I지구에 해당한다. 탑동유적은 발굴조사 결과 총 24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수혈유구 2기·건물지 1기·축대 9기·기와무지 1기·집석유구 7기·노지 3기·우물 1기 등이다. 이 유적은 고려후기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생활유적으로 계단상의 지형을 이용해 건물지 및 축대가 몇차례에 걸쳐 개축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분절유적의 발굴조사 결과 총27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청동기시대 주거
지 1동, 지상식 건물지 3동, 수혈 1기, 청동기시대 분묘 11기, 조선시대 수혈주거지 8동, 석열 2기, 근대 건물지 등이다.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지상식 건물지 등은 후대의 경작지로 인해 훼손이 심하여 전모를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주거지 중앙에 양쪽 주혈을 가진 타원형수혈이 있는 송국리형주거지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송국리 문화를 영위한 집단의 생활유적으로 파악된다. 청동기시대 분묘는 선대의 송국리형 주거지를 파괴하고 축조된 것으로 분포양상은 구릉의 말단부에 11기가 밀집되어 있다. 분묘의 종류에는 묘역식지석묘 5기, 원형 또는 방형의 구획석을 갖춘 구획묘 4기, 석관묘가 2기이다. 유물은 적색마연토기․화살촉․유구석부 등이
출토되었다.
이번 조사로 묘역식지석묘의 동남해안지역의 동쪽 한계선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사천 이금동, 창원 덕천리, 김해 율하유적 등의 관련 유적과 비교연구가 가능하리라고 생각된다.
구랑동고분군의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분묘 28기가 확인되었다. 본 조사구역 외에, 지표조사에서 무명산 중앙 능선을 따라 중심고분이 축조되는 것으로 확인되어 구랑동고분군의 범위가 상당히 넓을 가능성이 높다. 좁은 면적과 가파른 경사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많은 유구가 밀집 분포하여 전체적인 구랑동고분군의 규모는 인근 분묘집단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대규모의 분묘군일 가능성이 높
은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된 유물의 기종은 토기류가 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들 유물로 보아 유적의 형성시기는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