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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조사

 

당감동 성지 발굴조사

부서명
문화재조사팀
작성자
문화재조사팀
작성일
2009-10-20
조회수
504
시작일
199204
종료일
199206
내용
1992년 부산진구청이 시행중인 부암18호 광장∼개금동간 도로개설공사 구간에 東平縣成址의 일부가 포함되게 되었다. 따라서 공사로 인하여 유적이 파괴 소멸되기 이전에 성지에 대한 학술자료 확보와 잔존성곽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하여 공사시행청인 부산진구청의 예산지원을 받아 부산시립박물관이 1992년 4월 27일부터 동년 6월 20일까지 긴금수습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동평현은 원래 대증현으로서 신라 경덕왕때 동평현으로 개명하여 동래군의 領縣이 되었고 고려시대와 조선조 초기에 왜구가 동평현을 약탈해 갔다는 기록이 보인다.
동평헌성에 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적조에「동남은 석축이고 서북은 토축으로 둘레가 3,508척인데 지금은 파기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적은 부산시 부산진구 당감동 350번지 일대로서 금용산의 한 지맥이 동남으로 뻗어내린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조사에서 성벽의 축조수법과 남문지, 배수구 등이 조사되었고 자기를 비롯한 다수의 기와가 수습되었다.
성벽의 1차 축조는 성벽의 기저부에 흑색 진흙토를 다지고 그 위에 직경 20∼30cm 돌을 깔고 판축을 한 형태이다. 외벽은 기저부에 판석상의 할석을 2∼3단 쌓고 내벽은 작은 자갈을 이용 적석하여 축조하였다. 외벽에는 길이 420cm 마다 원래 기단석보다 1∼2단 낮게 판축 기둥을 받쳤던 것으로 보이는 판석이 있고 그 안에 판축토가 존재하고 있어 성벽은 전형적인 판축수법에 의하며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2차 축조는 1차 축조된 동일 석축렬을 따라 40∼50cm 높은 위치에 2∼3단의 할석을 쌓고 재차 판축한 형태로 1차 축조 목주구멍과 2차 목주구멍의 위치가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남문지에 있어서는 1차성벽 기단의 안쪽으로 석축열이 노출되었으며 2차 축조시 내벽의 보수 및 축조상태는 명확하지 않다.
3차 축조는 배교적 훼손이 덜된 발굴지의 동쪽끝지점에서 확인 되었는데 1, 2차와는 달리 40∼50cm 의 할석으로 내외 성벽을 포장하듯이 쌓은 석축형태이다.
남문지는 발굴지역의 중앙에 위치하는데 조사결과 3차에 걸친 수축의 흔적이 보이며 오래전 하수도관의 설치로 인하여 완전히 파괴되었다.
2차 축조는 문지 바닥전면에 판서글 깔은 형태로 내벽 동쪽 모퉁이에서 외벽쪽으로 난 소규모의 배수시설 유구가 조사되었다. 3차 축조는 2차 축조된 잔종층에서 50∼80cm 위에 축조되었는데 직경 20cm의 구멍이 파여져 있는 1×0.4m의 평평한 문초석이 노출되었다.
배수시설은 남문지 동쪽 약 30m 지점에서 조사되었다. 1차 축조시 만든 것으로 바닥을 판석으로 한 벌 깔고 할석을 1∼2단 쌓아 너비 60cm로 만들어 상부에는 큰괴석으로 덮었다. 괴석 사이의 틈과 괴석 상부에 할석을 깔고 진흙으로 밀봉하여 누수로 인한 성벽의 붕괴를 방지하였다. 2차 축조시 이 배수구의 바깥부분을 일부 보수한 흔적이 보이며 출구의 크기는 70×40cm이다.
성곽 외부의 퇴적층은 3개층으로 조사 되었는데 출토유물은 주로 기와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토기편과 자기

자료관리 담당부서

문화재조사팀
051-610-7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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