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좌동, 중동 유적은 부산광역시의 해운대지역 신시가지 조성 계획에 따라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1992년 9월 15∼10월 18일까지 실시한 지표조사 및 시굴조사 결과 이 일대에서 구석기와 삼국시대 토기편이 검출됨에 따라 공사 시행전 유적의 성격파악과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 정식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조사는 1992년 12월 22일∼1993년 4월 12일까지 약 4개월동안 부산시립박물관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유적은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59번지, 좌동 933번지, 산82번지에 위치한다. 좌동과 중동 구석기 유적은 직선거리로 약 300m 남짓한 근거리에 인접하고 있으며 부산시립박물관이 1990년 지표조사에서 확인한 청사포 구석기 유적과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유적은 해발 45m 선상의 낮은 구릉 대지상에 입지하며 유적의 층위 상태는 좌동, 중동 모두 동일한데 매우 단순한 편이다. 유적에서는 석기의 제작이나 주거와 관련된 유구는 검출되지 않았고 출토된 대부분의 유물은 석영제 반암제의 석기류였으며 완전한 형태는 적은편이고 박편이 다수를 차지한다. 좌동유적에서는 석영제 박편과 조각도, 긁개, 다면석기, 망치돌, 모루돌 등이 검출되었으며 상당수의 석핵과 박편이 수습되었다. 중동유적에서 석영제의 석기류가 거의 출토되지 않음에 비해 좌동 유적에서는 석영제 박편이 다량 검출되는 점이 주목된다. 중동유적의 유물출토 양상은 대체로 좌동과 비슷하나 여기에서는 세석인핵과 세석인 등 소형 밀개, 긁개, 뚜르개 등이 다무 검출되어 좌동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좌동, 중동 구석기 유적에서 특별한 시설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석기 제작과 관련된 망치돌, 모루돌 등이 다수 출토되고 유물의 분포상태가 조밀한 것으로 보아 석기 제작과 관련된 유적으로 보인다. 이 유적은 영남지방에서 최초로 정식학술조사를 실시한 구석기 유적으로 부산지역에서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가 후기구석기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좌동고부분군은 남쪽 평지를 바라보는 해발 40m의 저구릉상에 위치하며 유구는 모두 등고선 방향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발굴조사된 유구는 6기로 모두 반지상식의 횡구식석실묘이며 유존상태는 매우 불량하여 대부분 벽면 하단의 2∼3단 정도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석실의 형태는 모두 장방형을 이루며 한쪽 단벽을 입구로 이용하였고 모두 시상석이 마련되어 있다. 시상석의 배치 상태로 보아 1∼2회 정도의 추가장이 이루어졌으며 출토 유물은 적은편으로 대부장경호, 유개고배, 고배, 파수부고배, 단경호 등의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고분군의 석실의 구조와 배치상태, 수 그리고 독립된 구릉에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혈연관계가 있는 친족집단묘로 추정되며 고배의 형태, 석실의 구조 등으로 보아 무덤의 조성시기는 기원 6세기 후반경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