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박물관에서는 1987년 9월 10일부터 11월 13일까지 약 2개월간에 걸쳐 동래 두구동 임석 유적을 발굴 조사하였다. 임석유구는 부산시 동래구 두구동 산64-1, 65-1번지 일대이다. 부산시와 경상남도의 경계지점에 위치하는 공덕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수영구 東岸의 西向하는 낮은 구릉이다. 해발 50m, 比高5∼8m이다. 발굴 조사 전 본 유적에서 확인된 유구는 도굴된 석곽묘 5∼6기 뿐이었다. 그러나 조사결과 삼국시대(6세기대)의 석곽뵤 16기 외에 무문토기시대의 석곽 1기,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요 1기, 조선시대 초기의 瓦窯 1기가 검출되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무문토기시대의 석곽은 길이 300m, 너비 105m, 깊이 70m의 묘광을 파고 설치된 길이 145cm, 너비 60cm, 깊이 60cm의 소형 석곽으로 동서향이다. 할석으로 축조된 4벽은 정연하지 못하며 바닥에는 석곽내부로 함몰되어 있었다. 석곽내부에서는 磨製 石槍 1점과 무문토기蓋 1점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의 분묘는 모두 16기이며 모두 파괴되어 완전하게 남은 것은 1기도 없다. 정확한 형식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을 6기 뿐이며 폭이 넓은 橫口式 石室墓(5호, 12호), 폭이 좁은 竪穴系 횡구식석실묘(1호, 8호)와 수혈식 석곽묘(2호, 10호)로 나누어진다. 황구식 석실묘는 2기 모두 東短壁을 입구로 사용했다. 이 석실묘를 중심으로 석곽묘가 설치되어 2개의 군으로 나누어진다. 제5호분은 350×195×105cm 의 석실로 최상단석만 묘광밖으로 나오는 반지하식이다. 입구의 반대쪽의 중앙부에 돌을 2겹 정도 정연하게 깔아 1차 棺臺를 설치하였으며 2차 관대는 그 위에 돌을 2열로 배열하여 사용했다. 제12호분은 반지하식으로 석실 상부가 완전히 유실되었다. 관대는 세차례 설치하였으며 입구의 반대쪽에 토기를 부장하였다. 석곽묘는 모두 바닥에 자갈을 깔아 관대로 이용했다. 전면에 깐 것, 한 단벽쪽에 깔지 않은 것, 양단변쪽 모두 깔지 않은 것의 세 종류이다. 蓋石은 1매도 확인되지 않았으나 제1·2호분에서는 뚜껑을 덮은 후 보강한 것으로 보이는 돌들이 석곽 주위에 놓여있었다. 제10호분에서는 관의 주위를 보강한 돌들이 석벽을 따라 남아 있었다. 출토유물은 유개고배, 대부장경호, 원저단경호, 파수부옹, 연질옹 등 162점의 토기류, 삼엽형 환두대도, 대도, 철모, 철도자, 철부 등 65점의 철기류, 재갈, 행엽, 운주 등의 마구류 및 곡옥, 유리구슬, 은제이식 등의 장신구류 16점 등 모두 243점이다. 토기류는 대부분 신라계 토기이나 제3·10호분에서 출토된 유개고배는 短脚으로, 제작 기술, 소성도, 색조 등으로 보아 신라계 토기와는 구별된다. 이러한 고배는 5세기발∼6세기전반 김해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이다. 마구류는 제5호 횡구식 석실묘에서 출토되었는데 완전히 1벌을 갖추지는 않았으나 모두 鐵址金銅製이며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