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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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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래부산도병(東萊釜山圖屛)(제40호)

    Title

    분류명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소장품명
    동래부산도병(東萊釜山圖屛)(제40호)
    내용

    이 작품은 20세기 초 동래 전역 즉 현재의 부산 지역을 그린 회화에 지명을 부기한 10폭 병풍으로 동래부 各面과 부산부의 부산면을 망라하고 있다. 지도라기보다는 일련의 산수화로서 느낌이 강하며, 산수의 형상, 성곽 주변의 경물, 사원, 항만, 선박 등을 능숙하게 묘사하였으며, 색감을 조화롭게 사용하였다.

    제작 시기는 증기선이 3척 이상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증기선의 부산 내왕이 일반화된 시기 이후이고, 1905년 경부선 개통되기 이전의 시기이다. 관아 건물로는 1883년 동래감리서 설치 이후에 해당되며, 왜관이 일본 전관 거류지로 일관(日館)으로 불렸던 시기로 볼 수 있다. 행정구역 면에서는 부산면(釜山面)이 설치된 이후이며, 구포가 양산군에 소속되었던 시기이다.

    이 작품은 1905년 외교권의 박탈로 부산이사청이 설치되어 왜관이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불리고 이후 부산면(釜山面)이 새로이 구획된 시기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규격: (폭 당)34cm × 99.5cm, 10

     

  •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 柳沈 善政碑)(제8호)

    Title

    분류명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소장품명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 柳沈 善政碑)(제8호)
    내용

    수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수령이 임기를 마친 후에 지역 사람들이 세운 비석이다. 이 선정비는 1649(효종 원년) 11월부터 1651(효종 2) 7월까지 동래부사를 역임한 유심의 선정비이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 의하면, 동래부의 7개면에 모두 선정비가 세워진 동래부사로는 유심이 처음인데, 이는 유심이 동래부사에서 바로 경상감사로 임명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동래읍성 서문이 있었던 옛 동래전화국 뒤에 있었는데, 도로확장과 인접 지역 건축 등으로 훼손 우려가 있어 2001416일 부산박물관 야외전시장으로 옮겼다.

    이 비는 비석이 세워진 원래 자리에 있던 자연석 바위를 조각한 귀부(龜趺)와 장방형의 비신(碑身) 및 이수(螭首)로 구성되어 있다. 귀부는 원 자리에 있던 작은 바위를 윗면만 가공하여 다듬었기 때문에 등이 산처럼 다소 높으며, 귀부의 등에 비좌(碑座)없이 15정도의 홈을 파서 비신을 세웠다. 조각수법은 거친 편이나,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서민적이며 다소 해학적인 모습이다. 이수도 등이 높은 귀부와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삼각형으로 제작하였다. 중앙 하단에 상서로운 구름무늬를 두고 상단에 여의주를 중심으로 좌우에 쌍룡을 배치하였는데, 동래부사라는 신분상 발톱이 3개인 삼조룡(三爪龍)으로 표현되었다. 비신 앞면에는 해서(楷書)부사유공념청선선정만고불망비(府使柳公淰淸德善政萬古不忘碑)’라고 썼고 뒷면에는 세운 날짜, 건립 중심인물의 이름 등을 썼는데, 특히 석공 이름이 있어 주목된다. 조각기법이 조선 후기의 서민적이고 해학적인 면이 잘 나타나 있다. 선정비로서는 초대형이며, 귀부와 이수를 갖춘 조선 후기 비석은 남아 있는 예가 드물어 귀부와 이수는 비석 조성 시기인 1651년의 조각 양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높이: 227cm, 가로: 80cm

     

     

  • 박기종 통상복 일괄(朴琪淙 通常服 一括)(제9호)

    Title

    분류명
    부산광역시지정 민속문화재
    소장품명
    박기종 통상복 일괄(朴琪淙 通常服 一括)(제9호)
    내용

    박기종 일괄 유물 중 통상복으로 입었던 프록코트 1, 조끼 2, 바지 1점은 1907년에 개정된 문관복장규칙4조 소례복 일습의 연미복과 프록코트 중 프록코트에 해당하는 것으로 모자만 빠져 있으며, 나머지는 똑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 박기종은 1907년에 생을 마감했으나, 프록코트를 입고 지인들과 찍은 사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통상복은 박기종이 생전에 착용을 하였던 의상으로 당시 관직에 있던 사람들의 의복은 대부분 이미 서구식으로 변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상의 뒷목 둘레에는 ‘ASADA TAILOR’라는 상표가 부착되어 있는데, 제작 시기를 고려한다면 제작자는 서양 의복의 도입이 빨랐던 일본인의 가능성이 더 높고, 박기종이 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속의 많은 남자들이 모두 비슷한 의상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 있던 양복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소례복의 프록코트는 궁내에 진현할 때, 각 국경절에 하례할 때, 개인적으로 서로 예를 갖추어 방문할 때 착용하는 복장이다.

    박기종의 통상복 일괄 유물은 1907년에 개정된 문관대례복 규칙의 소례복과 같은 형태로 일습으로 제작된 복식자료로써 대한제국시기의 복식제도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며, 상의, 조끼, 바지가 일괄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 박기종 대례복 일괄(朴琪淙 大禮服 一括)(제8호)

    Title

    분류명
    부산광역시지정 민속문화재
    소장품명
    박기종 대례복 일괄(朴琪淙 大禮服 一括)(제8호)
    내용

    대례복은 박기종이 문관 칙임관(1~2품 관료) 시절에 착용하였던 것으로, 1900(광무 4)에 제정된 문관복장규칙의 칙임관 2등에 해당하는 복장이다. 문관 대례복은 산형(山形)의 모자, 연미복 형태의 상의, 조끼, 바지, 패검으로 구성되나 대례복 상의와 예도, 예도 띠, 대례모, 대례복 함 및 대례모 함만 남아 있고 조끼와 바지는 남아 있지 않다. 이 대례복은 박기종이 1900년 중추원 議官 주임관 4등급 등 다양한 관직에 임명되었던 것으로 볼 때 1900~1905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의는 검은색 모직과 연청색 모직을 사용하였고, 형태는 앞이 짧고 뒤가 긴 연미복 모양으로, 스탠딩 칼라에 가슴 부분에서 V자형으로 합임되는 형태를 하고 소매는 이중 소매로 되어 있다. 대례복 함은 나무로 직사각형 상자를 만든 후 금속으로 외부 전체를 감싼 형태로 뚜껑에 해당하는 부분은 금속으로만 만들었으며, 예모함은 예모와 같은 산형으로 금속으로 만들어져 검은색 칠이 되어 있다.

    박기종의 대례복 일괄 유물은 1900년 문관대례복 규칙에 의해 제작된 복식자료로 대한제국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일 뿐 아니라, 대례복, 예모, 예도, 예도 띠, 대례복 함, 예모함까지 일괄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대한제국시기의 복식제도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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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관리팀
051-610-7137
최근 업데이트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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