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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1919. 3.1일자 지하신문 2종 원본 부산박물관에 기증

부서명
교육홍보팀
전화번호
051-610-7185
작성자
정혜문
작성일
2019-02-25
조회수
390
첨부파일
내용

1919. 3.1일자 지하신문 2종 원본 부산박물관에 기증

 

◈ 부산박물관, 3·1일자 지하신문 『조선독립신문』, 『국민회보』희귀사료 2점을 부산 남구 거주 김석동 씨로부터 기증 받아
◈ 『조선독립신문』은 3·1운동 기록한 활판인쇄로 발행된 창간호 
◈ 『국민회보』는 필사본으로 일본에 의한 고종황제 독살설 주장

 

  부산박물관(관장 송의정)은 부산 남구 거주 김석동 씨로부터 부친(김장오(1896년생)이 귀중하게 보관해 온 3.1일자 지하신문 2점을 2019년 2월 1일자로 기증받았다.
 
  기증 유물은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1919년 3월 1일 발행한 『조선독립신문』창간호와 1919년 3월 1일 손으로 써서 배포된 발행자 미상의『국민회보』이다.   

  『조선독립신문』(신문사장 윤익선)은 서울에 있는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普成社)에서 독립선언서와 함께 인쇄하여 3월 1일 전격적으로 배포한 지하신문이다. 손병희, 김병조 등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泰和館)에서 3월 1일 하오 2시에 독립선언한 사실과 민족대표의 체포사실(민족대표 33인 종로경찰서 연행),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내용(비폭력운동 방침 포함)을 담고 있다.
  『국민회보』는 1919년 3월 1일로 적혀있는 필사본으로 발행처 미상의 지하신문이다. “아대행태상황제폐하(我大行太上皇帝陛下) 붕어(崩御)에 원인(原因)” 이라는 제하에 일본에 의한 고종의 독살설을 제기하고 “가칭선일동화(假称鮮日同和)함을 증명(證明)한 역적(逆賊)들”로 귀족대표 이완용 등 6인을 지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독립신문』은 3월1일 서울에서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普成社)에서 이종일, 이종린, 윤익선이 주도하여 창간하였다. 창간호는 활판인쇄로 발행되었으나 3월2일자 제2호부터는 등사판으로 발행하였다. 부산박물관에 기증된 『조선독립신문』은 당시 창간호로 인쇄된 활판인쇄 10,000부(윤익선의 경찰 신문(訊問)에서 10,000부 발행 진술)중의 한 점으로 추정된다.
규격은 가로 19.4cm, 세로 22.5cm으로 A4크기보다 조금 작은 크기이다.

 『국민회보』는 실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간접적인 기록으로만(극비문서, ‘독립운동에 관한 건’, 제7보,1919.3.6, ‘독립운동에 관한 건, 제43보,4.10,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ⅩⅩⅤ): 日本篇(7) 3.1運動 獨立宣言書와 檄文) 확인되고 있었는데, 이번에 실제로 그 존재를 확인하였다. 3월 1일로 날짜는 표기되어 있으나, 지하신문들은 대부분 3.1일 이후 발행되었기 때문에 이후에 발행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규격은 가로 38.2cm, 세로27.2cm 크기이다.

 한일합방 이후 총독부는 한국인이 발행하는 일간지를 모두 폐간시켰기 때문에 1910년대 무단정치 기간에는 한국인은 단 하나의 신문도 발행할 수 없었다.
1919년 3·1일 이후의 지하신문 발행은 대안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독립운동의 실상을 알리고 독립사상을 고취시켜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송의정 부산박물관장은 “이번에 기증받은 사료들은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더욱 큰 의미를 가지는 사료로서 향후 독립운동사료 전문가들과 협의하여 그 가치를 명확히 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 자료들은 2019년 3월 1일부터 6월 9일까지 부산근대역사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되는 3·1운동 100주년기념 특별기획전 『저항×2 – 3·1운동과 명정학교』 전시를 통해 일반시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