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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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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제200호)

    Title

    분류명
    국보
    소장품명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제200호)
    내용

    이 보살상은 보관, 대좌, 광배(光背)가 없어지고 천의의 일부가 결손되었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체구는 다소 경직된 느낌이 있으나, 떡 벌어진 어깨와 풍만한 가슴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곡선은 한결 부드럽고 탄력성과 중량감이 넘치는 듯하여 전체적인 자태는 비교적 온화한 인상을 준다.

    얼굴은 원만한데 아래턱은 살이 올라 풍만하고, 치켜 올라간 가는 눈과 오뚝한 콧날, 작은 입 등 표정은 자신 만만해 보이면서도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서려있어 보살의 자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양팔에 장식되어 있는 2쌍의 팔찌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것이 이 보살상의 특징 중 하나이다. 하반신의 아름다운 옷 주름과 천의의 율동적인 곡선은 장부와도 같이 당당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조화시켜 보살의 성스러운 정신을 표현하는데 큰 구실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표현이 사실에 충실한 편이며, 균형과 입체감도 충분하여 보살의 위엄과 자비로움을 함께 갖춘 불상으로 통일신라시대 장인의 기상과 원숙한 조형기법으로 조성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보살상은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불상의 내부는 비어 있으며, 도금은 거의 완전하여 아직도 금색이 찬연하다.

    높이 : 34cm

     

  •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제233-2호)

    Title

    분류명
    국보
    소장품명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제233-2호)
    내용

    표면에 음각된 명문을 통해 정확한 제작연도가 영태2(신라 혜공왕 2: 766)이라는 것이 밝혀진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는, 경남 산청군 지리산 남쪽 해발 900m에 위치했던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의 대좌 중대석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체부에는 3조의 세선을 돌렸으며, 정간(가로, 세로줄)없이 각 행이 811자로 구성된 15행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영태2년 병오72일 법승, 법연의 두 스님이 과거를 받들어 두온애랑을 위하여 석조 비로자나불을 이루고 무구정광다라니경과 함께 석남암 관음암에 봉안하였다. 두온애랑과 스님들 그리고 이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삼악(탐냄, 성냄, 어리석음)도의 업보가 없어지고 부처가 되기를 원한다"는 명문의 내용을 통하여 사리호와 불상의 정확한 제작연대와 내력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불상대좌석에 법사리를 봉안한 최초의 사례로 알려졌으며 비로자나불이 우리나라에 조성된 연도를 기존의 9세기 보다 1세기 앞당기게 된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표기 자체가 이두문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불교미술과 더불어 어문학 등의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높이: 14.5cm. 몸통지름: 12.3cm

     

  • 칠태부인경수연도(七太夫人慶壽宴圖)(제1809호)

    Title

    분류명
    보물
    소장품명
    칠태부인경수연도(七太夫人慶壽宴圖)(제1809호)
    내용

    16917월 숙종이 교지를 내려 재신과 종신들 가운데 일흔 이상의 노모를 모신 자에게 쌀과 비단을 하사하자, 병조판서 민종도(閔宗道) 등이 왕에게 나아가 사은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같은 해 8월 경수연을 열었다. <칠태부인경수연도>는 바로 이 경수연을 묘사한 그림이다. 경수연 장면을 묘사한 그림, 경수연 참석자의 좌촤(座次), 민정도가 지은 숙종에 대한 사은의 글인 사전(謝箋), 권해(權瑎)가 지은 경수연도서(慶壽宴圖序)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을 그린 이는 알 수 없으며, 글씨를 쓴 이는 강세황(姜世晃)이다. 강세황은 권해의 증손 권조언의 부탁으로 1745년 좌차, 사전, 서문을 쌌다. 그림은 세 장면으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 장면에는 일곱 부인을 비롯한 경수연에 참여한 집안부인들과 자손들이 그려져 있으며 두 번째와 세 번째 장면에는 일곱 부인의 자손 및 하객을 경수연에 참석한 이들이 실내 및 차일을 친 야외에서 잔치를 즐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연회장면을 묘사한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좌우대칭을 따른 정면과 구성은 물론 건물 지붕의 상단 부분만을 가린 서운의 도식적 표현, 그리고 소나무를 비롯한 수목들의 전형적인 배치 등에서 16세기 이후 확립된 궁중행사도의 특징적 요소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규격: 54.3cm × 572cm

     

     

  • 이덕성 초상 및 관련유물 일괄(제1501호)

    Title

    분류명
    보물
    소장품명
    이덕성 초상 및 관련유물 일괄(제1501호)
    내용

    20061229일 보물 제1501호로 지정된 '이덕성 초상 및 관련유물 일괄'은 이덕성 초상을 비롯하여 백패(白牌홍패(紅牌교서(敎書유서(諭書교지(敎旨교첩(敎牒시권(試券자의대비옥책(慈懿大妃玉冊봉래별장첩(蓬萊別章帖헌릉대왕신도비명(獻陵大王神道碑銘) 등으로, 모두 조선 숙종조 문신 이덕성과 관련된 유물121점이다. 이덕성(1655~1704)의 자는 득보(得甫), 호는 반곡(盤谷)이다.

    전주(全州) 사람으로 정종대왕의 열 번째 왕자 德泉君 李厚生8대손이며 함풍군(咸豊君) 이유간(李惟侃)의 직계후손이다. 1677(숙종 3)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82(숙종 8) 춘당대시에 병과로 급제하고, 동래부사·해주목사·병조참지·의주부윤·황해도관찰사·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대표적 유물인 이덕성 초상은 전체 길이 250, 너비 114의 족자 형태로, 화폭은 길이 166, 너비 99이며 앉아있는 인물의 높이가 145인 대작이다. 화면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忠淸觀察使李公諱德成字得甫畵像 完山人號盤谷乙未生甲申卒四十二歲時眞(이름은 덕성이고 자는 득보인 충청도관찰사 이공의 초상이다. 완산(전주) 사람으로 호는 반곡이며 을미년(1655, 효종 6)에 출생하여 갑신년(1704, 숙종 30)에 사망하였으며, 42세 때의 진영이다)"라는 화제가 적혀 있다. 인물은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자세로 교의(交椅)에 앉은 모습이다. 높은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녹색 단령포(團領袍)을 입고 있다. 얼굴은 가는 선묘를 사용했으며 홍조를 표현하고 명암을 살짝 가했다. 육리문(肉理文)은 없으며 수염이 길고 구불거리게 묘사되어 있다. 비교적 가늘고 짙지 않은 먹선으로 윤곽과 의습선을 표현하였고 명암을 조금씩 가했다. 쌍학흉배(雙鶴胸背)는 밝은 녹색 바탕에 단정학과 오색구름을 세필로 화려하게 그렸고, 삽화금대(揷畵金帶)도 정교하게 묘사하였으며, 짙은 먹으로 묘사된 교의(交椅)를 덮고 있는 표범 가죽은 가늘고 구불구불한 선으로 사실적으로 그렸다. 정형화된 공신도상(功臣圖像)으로부터 보다 자연스런 형식으로 변모해 가던 18세기 초엽의 정교한 작품으로 당시 초상화 연구에 중요한 사례이다. 한편, 자의대비옥책1687(숙종 13) 만수전 화재로 훼손된 것을 개수할 때 이덕성이 새로이 서진한 것이며, 봉래별장첩(·)은 동래부사 재임시절인 1688相臣·관직자·문인·명사·친척 등 수많은 인사들의 경하문과 격려문을 모은 서간문집이다. 이외에 이덕성 백패·홍패·교서·유서·교지·교첩·시권 등 이덕성 관련 고문서는 이덕성 전기 자료로서의 사료적인 가치와 조선 후기 인사·행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헌릉신도비명(獻陵神道碑銘문사발우(文史拔優반곡공수묵(盤谷公手墨) 등 그의 필적도 왕실 유물 및 서예사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현재 부산박물관에는 이덕성과 관련된 유물로 그의 동래부사 재임 시절인 1688(숙종 14) 중창한 동래남문비(시지정 기념물 제21)<이덕성가 문적(시지정 유형문화재 제84)>가 있다.

    규격: 167cm × 9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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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관리팀
강석범 (051-610-7134)
최근 업데이트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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