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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부산박물관, 기장 장안사 2차 발굴조사 학술연구총서 발간

부서명
교육홍보팀
전화번호
051-610-7185
작성자
정혜문
작성일
2019-03-06
조회수
523
첨부파일
내용

-조선시대 후기 장안사 대웅전 동쪽의 가람 구조와 배치 밝혀져-

부산박물관, 기장 장안사 2차 발굴조사 학술연구총서 발간


◈ 『長安寺 Ⅱ』2016년 기장 장안사 2차 발굴조사의 내용과 성과 수록
◈ 장안사 대웅전 동쪽 외곽, 조선시대 후기 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선원 구역으로 밝혀져

 

 부산시(시장 오거돈)는 장안사(長安寺)와 그 주변 일대의 문화재 종합정비․복원 사업에 따른 기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2013년부터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부산박물관은 2013년의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2014~15년 1차 발굴조사와 2016~17년 2차 발굴조사까지 3차례의 조사를 통해 장안사 대웅전 동쪽 일원의 사찰 건물터를 발굴한 바 있다. 이번에 발간된『長安寺 Ⅱ』는 2016년 12월 20일부터 2017년 3월 7일까지 실시한 기장 장안사 대웅전 북동쪽 일원 대한 2차 발굴조사의 내용과 성과를 수록한 부산박물관 학술연구총서이다.
 장안사는 선여사(船餘寺), 안적사(安寂寺), 취정사(鷲井寺)와 더불어 기장현의 4대 사찰 중 하나이다. 삼국유사와 대웅전 상량문 등 문헌기록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쌍계사(雙溪寺)로 불렸으나 애장왕 10년(809)에 장안사로 고쳐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후 임진왜란(1592~1598) 때 모두 소실된 것을 인조 8년(1631)에 중창하고 효종 9년(1658)에 대웅전이 준공되었다고 전해진다. 즉, 고려시대 이후부터 임란 전의 조선시대 전기까지 장안사와 관련된 문헌은 아직까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약 800년 동안 기록에서 사라진 장안사의 실체는 부산박물관의 발굴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밝혀지고 있다.
 2013년의 시굴조사에서는 장안사의 창건 기록을 뒷받침할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항아리를 매납한 진단구(眞壇具, 사찰 등의 건물 기단에 조성할 때 나쁜 기운을 진압하려는 목적으로 공양하는 진귀한 물건)와 다량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2014년에 실시한 장안사 대웅전 동쪽 일원의 1차 발굴조사에서는 부산에서 사찰 유적으로는 최초로 통일신라시대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특히 기록에서 전혀 확인되지 않는 조선시대 전기의 대형 건물터가 확인되었고, 조선시대 후기 건물터에서 대웅전 축조 연대보다 10년을 앞서는 ‘順治四年’(순치4년, 1647)명 암막새기와를 비롯하여 ‘康熙十年(강희10년, 1671)’명과 ‘康熙十二年(강희12년, 1673)’명 암막새기와가 출토되는 등 획기적인 고고학적 성과가 있었다.
 2016년의 2차 발굴조사지는 1차 조사구역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장안사 대웅전의 북동쪽 일원에 해당하는 곳으로 조사 결과, 조선시대 후기 조성된 건물터 3동ㆍ석열 3기ㆍ축대 3기 등 사찰과 관련된 전각과 부속 시설이 확인되었다. 또한, 각 전각과 부속 시설이 축조된 자리와 배치 등에 따라 증축 혹은 보수된 흔적이 확인되었다. 건물터에서는 백자 대접․접시․잔 등 자기류와 명문 암막새를 비롯한 각종 기와류, 상평통보 등 조선시대 후기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후기 건물터는 1차 조사에 비해 잔존상태가 양호한 편이어서 구조와 성격을 밝히는데 용이하였다. 3동의 건물터는 대웅전 북동쪽 모서리 부분에 ‘ㄱ’자 형태로 배치되었다. 건물터의 구조는 정면 2~3칸, 측면 1칸의 평면 장방형이고 정면 혹은 후면에 건물 외곽을 받치는 기단을 설치하였다.
 특히 1호 건물터는 내부에 아궁이-고래-연도-배연구로 이어지는 난방 구조를 모두 갖추고 있어서 사찰의 승려 혹은 관리인이 거주하는 주거 시설로 추정된다. 2호 건물터는 외부에 취사용 아궁이 시설이 마련된 것으로 보아 불전 공양을 위한 향전 시설로 추정된다. 3호 건물터는 아궁이가 없고, 빗물이 지붕의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면에 조성된 물받이 시설이 확인된 것으로 보아 사찰 물품이나 공양에 사용할 곡물 등을 보관하는 창고 시설로 추정된다.
 또한 출토된 백자가 기장군 정관읍 병산리ㆍ두명리 등 인근의 백자 가마유적에서 확인되는 조선시대 후기 17~19세기 백자의 특징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세 말에 주조된 상평통보가 출토되는 점이 주목된다.
 지금까지의 발굴조사 성과와 문헌 기록을 비교해볼 때 1660년대까지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불전 영역이 1670년 이후부터 대웅전 외곽에 요사채나 향전 등 생활 공간의 선원 영역이 확장되었다. 그 이후로 19세기 말까지 건물의 증ㆍ개축, 사면부 축대의 보수 등 사역 유지를 위한 개ㆍ보수 공사를 지속적으로 시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차 발굴조사를 통해 대웅전 동편과 북동편에 걸쳐 조성된 조선시대 후기의 장안사 북동편 사역에 대한 성격과 축조 연대를 추론할 수 있는 자료가 축적되어 그 의의가 크다. 또한 건물터에서 출토된 백자를 통해 소비 유적으로서 기장 지역의 백자 생산유적과의 유통 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까지 조사가 되지 않은 장안사 대웅전 북쪽 일대의 나머지 구역에 대해 기장군과 협의하여 올해 하반기에 3차 발굴조사를 실시할 예정에 있다. 발굴예정지는 2013년 시굴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 진단구가 발견된 바가 있어 통일신라시대 장안사의 사역 규모와 성격을 밝힐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