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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소장품

78 개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 이층농

    Title

    분류명
    기타중요소장유물
    소장품명
    이층농
    내용
    먹감나무로 앞면을 장식한 이층농이다. 주로 경상남도 충무나 통영지역에서 20세기 초에 많이 생산하였다. 농은 장과는 달리 각 층이 분리되며 주로 의류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이 농은 천판 없이 몸통과 다리로만 구성된 판형 이층농으로 먹감나무의 아름다운 목라를 좌우대칭으로 배열하여 독특한 자연미를 살렸다. 문판은 휘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목재로 문변자를 대어 구조를 보강하였으며, 쇠목과 동자는 짜맞춤한 후 하나의 판재로 보이도록 평면으로 가공하였다. 각 널의 연결부위와 모서리에는 망두형(望頭形) 감잡이・여의두형(如意頭形) 귀장식・나비문양 경첩・박쥐문양 광두정 등의 장석을 부착하여 장식하였으며, 문판에는 나비문양 앞바탕에 태극문양의 팔각자물쇠를 달았다. 문판 아래의 머름칸에는 장식을 겸하여 화형 바탕에 ㄷ자형 들쇠를 부착하였다. 옆널에는 운반하기 편리하도록 각 층에 들쇠를 달았다. 마대에는 박쥐형태의 풍혈이 있으며 다리 끝은 기하문양으로 장식하였다.
    ◎시 대 : 20세기
    ◎규 격 : 먹감나무・소나무 825×400×1336㎜
  • 삼층장

    Title

    분류명
    기타중요소장유물
    소장품명
    삼층장
    내용
    살림살이를 효율적으로 수납하기 위해 제작한 장이다. 주로 옷가지를 보관하는 용도로 부녀자가 안방에 놓고 사용했던 가구이다. 겉면 전체에 주칠을 하였고, 기둥・쇠목・동자 부분에는 흑칠을 하여 색채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 천판 아래에는 박쥐형태의 손잡이가 부착된 네 개의 서랍을 제작하여 작은 물건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 층에는 4개의 머름칸을 한 단으로 배열하고 그 위에 2단의 쥐벽칸과 여닫이문을 두었는데, 일층은 다른 층에 비해 한 단의 머름칸이 더 있고 너비가 좁고 높이가 낮은 5개의 머름칸을 배열하고 있다. 이 구조는 하부의 공간을 조금 더 크게 제작하여 철이 지난 옷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각 층의 기둥과 쇠목의 연결부위에는 약과형 감잡이로 몸체의 모서리에는 귀장식을 붙여 보강하였다. 문판에는 약과형 앞바탕에 자물쇠를 부착하고 약과형 경첩을 달았으며, 네 모서리에는 귀장식을 부착하였다. 다리는 약간 곡선을 이루어 호족(虎足)을 연상케 하며, 마대의 각 면에는 구불구불하게 얽힌 당초문양과 박쥐형태의 풍혈이 있다.
    ◎시 대 : 20세기
    ◎규 격 : 배나무 1061×534×1559㎜
  • 산수도

    Title

    분류명
    기타중요소장유물
    소장품명
    산수도
    내용
    허련은 스승인 김정희의 필의(筆意)를 따른 방작산수(倣作山水)를 다수 남기고 있다. 이 작품은 방작산수 중 하나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仿阮堂山水圖》와 거의 비슷한 화면구성을 보이고 있다. 예찬식의 평원적 구도에 맑은 갈필로 그려진 산수는 스승 김정희가 강조했던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를 구현하고자 했던 작품 중 하나이다. 허련 특유의 서체 화제에 글 말미에는 ‘小癡’ 주문방인 1과가 찍혀 있다. 畵山水之法 洵可以意會 不可以言傳. 用墨先後 渲染濃淡 配合遠近諸法 得之心應之手. 所謂咫尺應 湏論萬里者 其爲臥遊 不亦遠乎. 산수(山水)를 그리는 법은 참으로 그 마음이 한곳에 모아져야 하니 말로 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먹을 먼저 쓰고 뒤에 쓰든가, 색채의 농담(濃淡)을 처리하든가, 거리의 원근(遠近)을 맞추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은 마음으로 터득하고 손으로 따르는 것이다. 지척(咫尺)의 거리라 하더라도 반드시 만리(萬里)밖을 상논(想論)해야 하는 것이니, 그것을 누워서 유람(遊覽)하자니 또한 멀리 보이지 않겠는가?
    ◎ 시 기 : 19세기 후반
    ◎ 규 격 : 세로 25.8cm, 가로 26.1cm
    ◎ 재질현상 : 종이에 수묵담채
  • 묵란도

    Title

    분류명
    기타중요소장유물
    소장품명
    묵란도
    내용
    윤용구(尹用求, 1853~1939)는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주빈(周賓), 호는 석촌(石村)·해관(海觀)·수간(睡幹)·장위산인(獐位山人)으로 남녕위 의선(宜善)의 아들이다. 1871년(고종 8) 직장(直長)으로서 문과에 등제하여 벼슬이 예조·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에는 법부, 탁지부, 내무대신에 10여 차례나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절하고, 서울 근교 장위산 밑에서 은거하였다. 해서․행서․금석문을 즐겨 썼으며, 난죽을 잘 그렸다. 난초와 대를 그릴 때 잎사귀 끝을 아래로 향하게 하는 도수란(倒垂蘭), 도수죽(倒垂竹)을 즐겨 그렸으며 포물선 구도를 선호하였다. 이 묵란도는 도수란의 형태는 아니지만 뭉툭한 난엽의 표현과 말단부의 먹점에서 윤용구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 화면 우측 하단에 ‘石村退樵’라는 관지를 쓰고 ‘尹用求印’, ‘癸丑生’ 2과를 찍었다.
    ◎ 시 기 : 19세기 후반~20세기 초
    ◎ 규 격 : 세로 33.2cm, 가로 22.0cm,
    ◎ 재질현상 : 종이에 수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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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관리팀
051-610-7137
최근 업데이트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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