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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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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제78호)

    Title

    분류명
    부산광역시지정유형문화재
    소장품명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제78호)
    내용

    이 작품은 1687년에 석각으로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보물 제837)를 기본으로 하여 하늘의 별자리를 필사한 천문도로, 천상열차분야지도란 하늘의 모양(별자리)을 차례대로 나눈 그림이란 뜻이다.

    화면 제일 위 상단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행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라 썼으며, 그 아래로 천문도와 명문이 기록되어 있다. 정확한 제작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천문역법을 익히기 위해 음양과 출신 집안에서 교재용으로 만들었거나, 관상감에서 천문학교수, 겸교수, 직장, 봉사, 훈도 등의 평가를 위해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도는 5장의 장지를 붙여서 화면을 형성하였으며, 겹쳐서 배접된 종이 뒷면으로는 먹으로 쓴 언문이 보인다. 장지를 여러 겹으로 겹쳐서 제작하였기 때문에 견고하며, 구성과 내용도 빠진 부분이 없이 상세하여 민간인을 위해 제작한 천문도와는 차이가 있다.

    이 천문도는 숙종 복각본을 기본으로 하여 17세기 말 ~ 18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알려진 천상열차분야지도 중 가장 세밀하고 별의 크기와 색깔의 차이로 별자리의 식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다. 비록 구본을 필사한 것이지만, 1742년에 제작된 신법천문도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내용, 보존 상태, 과학 문화재의 희소성을 감안할 때 과학사 연구에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문화재이다.

    규격: 77cm × 154.6cm

     

  • 유원각선생 매안감고비 및 비각(柔遠閣先生 埋案感古碑 및 碑閣)(제48호)

    Title

    분류명
    부산광역시지정유형문화재
    소장품명
    유원각선생 매안감고비 및 비각(柔遠閣先生 埋案感古碑 및 碑閣)(제48호)
    내용

    유원(柔遠)’이란 서경(書經)시경(詩經)유원능이(柔遠能邇)’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멀리 있는 것을 회유한다는 뜻으로서 조선시대에 대일외교정책인 문린정책(文隣定策)을 나타내는 말이다. 유원각선생은 부산 지방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외교관계에 종사한 관리들의 명단이다. 그런데 이들이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어 왜관이 폐쇄된 때인 1879(고종13)까지의 왜관 종사 관리의 명단인지,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어 감리서 제도가 사실상 폐지된 뒤의 감리서 직원 명단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비석은 원래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 6754-17번지 113반에 위치하였으나 20009월 부산시립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이전 당시 매안 서류를 찾기 위해 비석 하부를 조사하였으나, 암반과 생토가 있었으며 매장물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만 비문의 드디어 유지(遺址)에 비각을 세우고 유원(柔遠)이라 이름한다라는 내용으로서 통사청이나 감리서 등의 위치를 비정할 수 있겠다. 이 비는 비석과 비각이 석조로 결구된 하나의 구조물로 개항 이후 우리 비석과 왜식 비각이 결합된 독특한 양식이다.

    (비신) 가로: 75.4cm, 높이: 155.8cm

    (비각) 가로/세로: 261.5cm, 높이: 320cm

     

  • 범어사명 유제시루(梵魚寺銘 鍮製甑)(제46호)

    Title

    분류명
    부산광역시지정유형문화재
    소장품명
    범어사명 유제시루(梵魚寺銘 鍮製甑)(제46호)
    내용

    2점의 유제시루로 경상남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10호로 지정된 통도사 소장 순치 16년명 청동시루와 대동소이하며 대체로 통도사의 시루를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 연대도 통도사 시루가 1659년이고 범어사의 시루는 1664년으로 5년 차이이고, 통도사나 범어사가 지역적으로 가까워 제작자가 같을 가능성이 높다.

    2점 중 대형 시루는 187자의 명문을 새겨 제작처와 소장처가 금정산 범어사라는 것을 밝히고 그 다음으로 시주자 54명의 명단과 연화자 명단을 기록하였으며, 마지막으로 別座의 이름과 주조된 날자, 무게(300) 등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에 이 정도 규모의 시루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동래 지방이 병자호란 당시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고, 1609년 일본과의 국교가 열리면서 두모포 왜관이 설치되어 상거래가 재개됨으로서 기층민들이 부를 축적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대형 시루는 입지름이 110에 달하며, 전체적으로 원래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시루 밑 부분 일부는 산화되어 수리되었고, 균열이 간 몸체 일부를 수리하였으며 시루판의 동자판 1개도 없어졌다. 중형 시루도 대형 시루와 같은 계통으로 규모만 차이가 날 뿐 제작 시기, 기법, 의장 수법이 대동소이하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시루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제작 시기, 시주자, 제작처 등 시루의 제조 과정과 당시 범어사의 상황을 알 수 있는 187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높이: 51.5cm, 입지름: 110cm

     

  • 머릿장

    Title

    분류명
    기타중요소장유물
    소장품명
    머릿장
    내용
    머리맡에 놓고 귀중품이나 일상용품을 간편하게 보관・사용하는 단층장을 말하며 ‘애기장’, ‘버선장’이라고도 한다. 소나무로 만든 이 머릿장(單層欌 Headside Chest)은 미닫이 문판 안에 일정한 간격으로 살을 붙인 형태로 경상남도 밀양지역에서 주로 제작되었다. 천판은 두루마리 형으로 양 귀를 턱짜임으로 붙이고 연결부위가 빠지지 않도록 감잡이를 붙여 보강하였다. 천판과 옆널, 옆널과 밑널은 장부짜임으로 연결하였고 옆널・쇠목・동자 등 각 연결부위는 감잡이와 세발감잡이를 붙여 보강하였다. 수납공간은 미닫이문과 서랍으로 구성되는데, 문판에는 여의두문양 바탕의 잠금장치를 부착하였고 네 모서리에는 박쥐형태의 귀장식을 달았으며 세 개의 서랍에는 은혈자물쇠와 ㄷ자형 들쇠 손잡이를 달았다. 옆널 양쪽에는 들어 옮기기 편하도록 활형 들쇠를 부착하였다. 다리는 몸통 일체형이며 박쥐형태의 풍혈이 있다.
    ◎시 대 : 20세기
    ◎규 격 : 소나무 1003×460×788㎜

자료관리 담당자

유물관리팀
조재용 (051-610-7137)
최근 업데이트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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