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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부산근대역사관·범어사성보박물관, 3·1운동 100주년 기념 공동 기획 특별전시 ‘저항×2-범어사 3·1운동과 명정학교’

부서명
근대역사관
전화번호
051-601-1821
작성자
장경준
작성일
2019-03-28
조회수
1638
첨부파일
내용

- 부산근대역사관·범어사성보박물관, 3·1운동 100주년 기념 공동 기획 특별전시 개최 -

저항×2-범어사 3·1운동과 명정학교

31일부터 69일까지 부산근대역사관과 범어사성보박물관 전시실에서 전시

명정학교 출신 독립운동가 <김법린 선생 관련 자료> 3.1운동 관련 자료 전시

 

부산근대역사관(관장 최정혜)과 범어사성보박물관(관장 경선)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공동기획특별전 저항×2-범어사 3·1운동과 명정학교을 개최한다.

 

2019년은 세계만방을 향해 대한이 자주 독립 국가임을 선포한 3·1 만세의 우렁찬 외침이 있은 지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그 사이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를 이 땅에서 몰아내고 독립을 쟁취했으며 고도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세계를 선도해 나가는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오늘의 눈부신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100년 전 대한 민중이 보여준 비폭력 평화 정신과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 때문이다. 우리가 그날을 되돌아보고 마음 깊이 새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범어사 3·1운동을 통해 이번 전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 역시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부산 지역의 대표적 만세 운동인 범어사 만세 운동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제1<민족교육의 산실, 명정학교>, 2<범어사 만세 운동의 주역들>, 3<범어사 만세 운동의 후원자들>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교육의 산실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범어사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명정학교를 소개한다. 명정학교는 강원과 선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전통적 불교 수업을 뛰어 넘어 근대교육과 융합함으로써 불교의 개혁을 추구하였던 오성월 대선사의 의지를 바탕으로 1906년 설립되었다. 190851일 사립명정학교로 인가받은 한편, 1916215일에 개설된 범어사 지방학림과 함께 불교계의 근대교육을 책임졌던 명정학교는 범어사 31운동을 주도했던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일제 총독부는 이에 대하여 명정학교와 범어사 지방학림의 폐교 조치로써 보복했다. 하지만 범어사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포교당을 비롯하여 야학과 유치원 등을 개설하여 민족교육을 수행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이후로도 지역의 근대교육에 지속적으로 일조하였다.

한편 1926315, 범어사는 불교전문강원을 개설함으로써 민족교육을 계승하고자 했다. 그러나 1943년 강원을 책임지던 김법린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되면서 이곳이 폐원되는 고난을 또 다시 겪게 되었다. 결국 해방 이듬해인 1946315, 금정초급중학교가 창설되면서 명정학교와 지방학림의 맥을 잇게 되었다. 이러한 범어사의 민족교육을 위한 노력은 민족의 질곡 기를 극복한 바탕이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계승되고 있다.

 

2부에서는 김법린, 김영규 등 명정학교 및 지방학림 출신으로 범어사 만세 운동을 주도한 주역들을 소개한다. 범어사 만세 운동은 한용운, 오성월 대선사의 지도 아래 김법린, 김상헌 등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곧 유심회를 통하여 범어사에서 서울로 올라온 김법린과 김상헌을 지도하고 있었던 한용운은 3·1운동에 즈음하여 부산 불교계에서도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도를 준비했다. 이를 위해 19192월 하순 범어사를 방문하여 오성월 대선사를 비롯한 원로 중견 승려들과의 만남을 가졌던 한용운은 3·1운동 당시에 김법린과 김상헌을 불교학생대표로 선출해 탑골공원 만세시위를 주도하게 했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김영규·차상명·김상기·김한기·허영호·김봉환·박정국·지용준 등 명정학교와 지방학림의 학생들이 만세 운동을 이끌었다.

 

3부에서는 범어사 만세 운동을 뒤에서 도운 후원자들을 소개한다. 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선찰대본산 범어사 역시 그 순간을 함께 했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오성월 대선사가 주도해 경허 대선사를 초청함으로써 선풍(禪風)을 일으키고 있던 범어사는 1911년 한국 불교의 자주성 및 선종 수호를 위한 임제종(臨濟宗) 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오성월 대선사는 한용운 등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범어사의 김법린·김상헌 등을 그에게 보내 지도받게 했다. 오성월 대선사를 비롯해 한혼해·이담해·김경주 등은 범어사의 수선결사 운동을 강화하여 일본 불교의 침투를 저지했다. 또 범어사 지도부는 명정학교와 지방학림을 세워 근대민족교육과 불교 개혁 운동을 동시에 주도했다.

 

남녀와 노소, 계층과 신분, 종교와 사상, 지역을 초월해 비폭력 평화 시위로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은 우리 민족사, 나아가 세계사에서 매우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3·1운동을 계기로 공화주의가 대두되어 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을 표방하게 되었고 전통 유교 사상 대신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근대 사상이 부흥했다.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무단통치가 종식되고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교육운동·출판운동, 농민·소년·여성·노동운동, 물산장려운동 등 민족 실력 양성 운동도 전개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이후 외교와 무장투쟁을 통해 보다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발판도 되었다. 또 세계 여러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주어 중국, 인도, 필리핀, 이집트 등지에서 독립운동이 촉발토록 했다. 무엇보다 큰 의의는 3·1운동이 독립을 쟁취하는 데 정신 유산으로 작용하였다는 데 있다.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독립을 향한 열기를 꺼뜨리지 않고 광복을 이룰 수 있었던 정신적 기저가 바로 3·1운동이었던 것이다.

 

부산근대역사관과 범어사성보박물관은 이번 범어사 3·1운동 전시를 통해 국내와 해외에서 봇물처럼 터져 우리민족 저항사에서 거대한 물줄기를 이룬 3·1운동과 그 정신이 되살아나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고 민족의 대통합을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 전시의 개막식은 31일 오후 2시 범어사성보박물관에서 열리며 관람은 31일부터 69일까지 부산근대역사관 기획전시실과 범어사성보박물관 전시실에서 할 수 있다.